서점을 구경하다가 예쁜 표지 색깔에 이끌려 손에 집었다. 곧 크리스마스였고 서점에도 밝은 분위기와 분주함이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는 사람들마다 세세한 기억은 다를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오빠와 함께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자던 기억이 있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도 있다. 작년에는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기 위해 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거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진 않지만, 캐롤을 듣는 것도 좋고 반짝거리는 장식도 좋고. 크리스마스 특유의 밝은 분위기가 좋다. 세세한 부분을 다르더라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는 모두의 기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반짝거리는 전구 장식, 선물과 음식들, 즐거운 대화.
책 속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묻어나왔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첫 번째 작품을 제외하고는 크리스마스의 신비로운 힘에 대한 이야기라 좋았다.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행동들을 행하게 되는 기적, 따뜻함을 주고받는 것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힘. 읽으면서 독특하다고 느꼈던 첫번째 작품은 트리를 바라보며 가지가지마다 걸린 사물과 추억을 헤아린다. 사물에 얽힌 추억도 있고, 악몽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음산하게 느껴지는 소문/미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어린 시절의 나라면 크리스마스는 지금처럼 밝다고 여기기보다는 신비롭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내가 자는 사이에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신다니! 호두까기 인형이 나쁜 생쥐들을 물리치고 구해주다니! 모든 일들을 잘 믿는 나라면 어린 시절에도 분명 모두 믿었을 테고, 모든 이야기들이 마냥 신비로웠을 것이다.
책 속에는 크리스마스 풍경에 대한 세세한 묘사들이 있다. 그것은 외국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내 기억 속 풍경들과는 분명 다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공통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내 나름대로의 풍경을 떠올려볼 수도 있었다. 풍경은 다르더라도 크리스마스는 공통적으로 즐거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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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의 방이 12년 전에 비해 작아졌다거나 당신의 유리잔에 채워진 것이 스파클링 와인이 아니라 악취가 나는 펀치라면 모양새라도 보기 좋게 만들어서 당장 그 자리에서 잔을 비우고 또 다른 잔을 채워라. 그리고 당신이 과거에 늘 불렀던 짤막한 옛날 노래를 명랑하게 부르며 하느님께 더 나빠지지 않았음에 감사하라. ~모두가 많이 가진 지금의 축복에 대해 생각하고 모두가 적게 가졌던 지난 불행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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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란 이름 안에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질투와 불화는 잊히고 오랜 시간 동안 낯설었던 사교의 감정이 깨어나 만발한다. 지금껏 봐오면서도 회피의 눈길을 주고받았던, 과거 수개월 동안 차갑게 아는 체를 했던 아버지와 아들과 남매는 화기애애한 포옹을 주고받으며 현재의 행복 속에 과거의 적대감을 묻어둔다. 서로를 향한 열망은 있었지만, 자존심과 자존감으로 잘못 표현됐던 마음이 다정한 마음으로 다시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이 친절과 자비로움으로 가득 찬다. 바라건대,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이기를! 그렇게 되면 적어도 우리의 착한 본성을 추하게 만드는 편견과 걱정이 지금껏 서로를 모르고 지냈던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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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삶이 너무나 고착되어 있기에 크리스마스와 같이 일 년에 한 번 있는, 눈에 띄는 삶의 이정표 앞에서만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금껏 있던 것과 지금은 없어진 것들 아니면 지금껏 있었고 아직도 있는 것들을 회상하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진지하게 과거에 없었던 것들을 똑바로 회상해 본단 말인가? ~크리스마스 정신을 좀 더, 조금만 더 당신의 심장 가까이에 두자. 크리스마스 정신은 본분과 친절 그리고 관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인내하며 즐겁게 베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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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12번의 타종 중 첫 번째 종소리가 인근 교회로부터 들려온다. 우리는 이제 고백을 해야만 한다. 그 소리에는 분명 끔찍한 어떤 것이 있다. 엄격히 말하자면, 그 소리는 그 어떤 때보다 마음에 새겨진다. 너무 빨리 시간을 도둑맞기 때문이다. 도둑맞는 줄도 모를 만큼 빠르게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삶은 시간으로 측정되지 않던가! 그 엄숙한 종소리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 사이에 서 있는 이정표 중 또 다른 하나를 지나쳤다고 경고한다. 그렇듯 그런 마음은 숨기자. 그렇지 않으면 마음속에서는 반성의 강요가 일어날 것이고, 다음 종소리가 새해의 도래를 선언할 때면 우리가 너무도 자주 무시해 왔던 시간의 경고에, 그리고 지금 우리 마음속에 자라나는 이 따듯한 감정에 무감각해질지도 모른다.
찰스 디킨스 에세이집. 디킨스는 1843년 12월 17일 크리스마스캐럴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크리스마스캐럴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으며 영미문화권에서는 호랑가시나무, 미슬토,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이후로도 디킨스는 차임벨 , 고블린 이야기 , 가족동화 ,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 등의 단편 소설과 크리스마스트리 , 크리스마스 만찬 , 크리스마스 에피소드 , 나이 들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인가? 와 같은 크리스마스 관련 에세이를 거의 매년 발표하면서 크리스마스의 작가라는 명성을 이어나간다. 그 중에서도 1850년 주간지 「하우스홀드 워드」에 실린 크리스마스트리 는 기억을 테마로 한 최고의 에세이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의 방에 놓인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떠올리며 트리를 장치 삼아 이야기를 구성해 나간다. 오뚜기 인형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코담배 상자, 판지로 만든 인형, 마스크, 늙은 당나귀, 책, 인형의 집, 빨간 망토 소녀 등을 거치며 과거 크리스마스의 추억과 풍경을 떠올리고 트리 장식품에서 느꼈던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공포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작품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6편의 짧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이 책에는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기억들을 담은 크리스마스 에피소드 , 크리스마스 만찬 , 나이 들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인가? 와 새해 라는 작품이 실려 있다.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 에피소드( 험프리 님의 시계 에서)
크리스마스 만찬
나이 들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인가?
새해
작가 연보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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