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에는 지난 생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한 발 한 발 목숨을 통째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64p)목숨을 걸고 촐라체에 왔는데, 촐라체가 없다. (118p)눈덮인 산. 그 속에 숨겨진 크레바스. 조난 그리고 이어지는 형제애. 아주 극적인 장치들은 다 끌어다 썼다 싶지만서도 그러면서도 잘 읽혀지는 것이 이런 소재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다분히 상업적이다 싶으면서도 또 감동을 주는 이야기. 외면할수 없는 문학이기도 하다.사람들은 당최 왜 무엇때문에 산을 오르는가. 누군가는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라고 말을 했다지만 헉헉대며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만 하는 것이 등산이 가장 기본 아니던가. 누군가는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했다지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오르는 이도 있다지만 별달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등산이기도 하다. 그런 개인적인 저의견은 차치하고 오늘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 산은 북적거린다. 그 꼭대기에 서고 싶어하는 자들로 말이다.많츤 주인공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단 세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베이스 캠프를 지키는 캠프지킴이. 그리고 빙벽등반을 하는 배다른 형제 상민과 영교. 단촐하지만 그들의 여정은 촐라체라는 큰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없이 원대하고 크게만 보인다.촐라체를 향한 그들의 등반은 심지어 무모해보이기까지 하지만 도전이라는 것이 원래가 무모함을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막다른 골목에 놓인 그들이 할수밖에 없었던 단 하나의 선택. 그랬기에 그 선택은 더욱 질실하고 더욱 간절하고 더욱 안타까울수 밖에 없다. 제발 살아남으라고, 자연을 이길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생을 유지하라고 응원하고 격려하게 된다.에베레스트 남서쪽에 위치한 촐라체. 그북벽을 등반하기로 한 형제. 그들이 본디 친했던 것도 아니고 등반을 여러번 한 것도 아니다. 형은 자신을 오랜만에 찾아온 동생을 데리고 이 곳에 왔고 그리고 등반을 준비할 뿐이다. 세르파를 데리고 가는 것도 아니고 등반대를 조직해서 가는 것도 아니다. 도구나 기구들을 많이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오직 맨몸으로 자신들의 힘으로만 그곳을 오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무모한 도전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가능하다면 그들의 도전은 아무런 소실없이 무사히 끝나게 될 것인가.아무리 등반을 한다해도 베이스캠프를 지킬 누군가는 필요한 법. 자신조차도 알지 못했던 아들을 절에 떠나보내고 헛헛한 마음으로 산을 떠돌던 그가 캠프를 맡게된다. 형제에 비해서 별로 드러나지 않는 존재이기는 하나 그가 이곳까지 오게 된 그 마음을 생각해보면 그 또한 형제와 다를 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 형제는 무사히 살아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캠프지킴이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눈덮인 산은 위험하다. 그냥 높은 산도 위험하지만 눈이 덮이면 그 밑에 크레바스 즉 갈라진 틈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더 위험한 것이다.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피켈로 하나씩 찍어가면서 확인을 하고 가야하기 때문에 더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눈이 내린만큼 추위도 한몫한다. 보통의 산보다 더 위험해지는 겨울 눈산.그들이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등반을 계획한 이유는 지금 자신들이 마주하고 있는 삶을 조금 외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 이런 위험한 도전을 이겨내고 나면 자신들이 외면하고 있던 것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설마 죽음을 계획하고 도전장을 던질진것은 아닐테니 말이다.오래전 보았던 버티칼 리미트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크레바스에 걸려서 하나의 자일에 여러명이 달려있던 상황. 등산가들은 그런 상황이 되면 누구라도 줄을 끊으라고 한다. 단 한명이라도 살려면 눈을 감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자일에 연결해서 가는 형테를안자일렌이라고 한다. 위험한 지역을 갈때 서로 같이 이동하기 위해서 엮어지는 것이지만 정작 위험한 상황에서는 그 줄을 잘라야 살수 있는 것이다. 단 두명인 형제는 이 상황에서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까. 한편의 산악영화를 보는 것 같은 생생함이 책속 가득하다. 2008년 첫판을 인쇄한 작품이면서 2010년에 25쇄가 찍힌 작품 그 인기를 알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수 있는 그런 작품이라는 소리다. 히말라야에서 숨진 산악가들의 영면을 기린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저씨던 산악가 박영석의 명복도 아울러 빈다.
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그 뜨거움에 대한 목마름
가혹한 생존의 갈림길에서 신뢰의 끈을 놓지 않고 끝내 인간의 길을 걸어간 두 남자의 이야기
에베레스트 서남쪽에 있는 촐라체(6440m)라는 산의 정상을 오른 뒤 하산 중에 실족한 형제가 7일 만에 극적으로 돌아온 생환기를 담은 디지털 인터랙티브 연재소설. 박범신은 국내 소설가로는 최초로 이 작품을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를 통해 발표하였다. 작가는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매채에 연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오히려 클래식한 글쓰기를 고집하면서 문제의식을 극한으로 밀고 나갔다. 시대를 고민하는 작가의 날 선 문제의식이 이 시대 젊은 독자들의 독서 욕망과 행복하게 조우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소설은 거세된 꿈을 찾아 떠나는 장중한 이야기로 경쟁주의를 기반으로 한 배금주의와 편이성, 효율성만을 앞세운 문명이 만들어낸 안락주의적 삶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꿈’이 없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말해준다. 작품 속에서 ‘촐라체’는 단순한 산이 아니다. 촐라체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고, 야성에 대한 이야기고, 우리가 잃어버린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촐라체 는 생존의 길과 인간의 길이 하나로 모이는 경험, 극한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더 존엄해지는 인간 삶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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