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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요 엄마


신정에 시골에 계신 엄마한테 가기로 했다. 늘 신정이면 가까이 있는 가족들끼리 친정에 모여서 놀곤 하는데 엄마한테 뭘 가져갈지 고민중이다. 컬러링 북을 또 드릴까, 아니면 선물 받은 성경 필사 노트를 드릴까 생각하다 엄마와 얼마나 더 신정을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결혼 전에 친구들과 놀거나 다른 약속이 있어 친정에 못 간다고 하면 늘 형부가 앞으로 엄마를 얼마나 더 보겠냐고 기회 있을 때 자주 가서 뵈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가 없는 내 삶은 상상도 가지 않는데 누군가 갑자기 엄마의 빈자리를 준비하라고 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이 그런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로 시작하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생소한 의문이 있었다. 과연 나는 내 엄마를 엄마라는 존재가 아닌 여자로 보았던 적이 얼마나 있을까. 꼬장꼬장하고 주인공과 사이가 그렇게 좋았다고 할 수 없는 엄마의 유품에서 나온 립스틱을 보는 순간, 자식들의 결혼식 날 이외에 립스틱을 바른 엄마의 모습이 있기나 했는지 떠올려보면 없었다. 엄마에게는 새로 생긴 직함보다 사라져버린 직함들이 더 많기에(이를테면 아내, 며느리, 제수씨, 딸 이런 호칭이 엄마에게는 없다.) 오로지 나의 엄마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까지는 괜찮았다. 아이를 낳고 나니 여자의 삶은 사라져 버렸다. 외출할 때면 수유복에 레깅스가 전부고 늘 아이를 안고 다니니 옷도 대충, 화장은 안 한지 몇 년이나 되었고 입을 만한 옷을 구입한 적도 거의 없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갈 때 쯤 엄마가 아닌 여자 시늉을 좀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럴 여유가 아예 없었다는 생각을 하면 먹먹해진다. 한량인 아버지 곁에서 9남매 키우고 농사일하고 시집살이까지 했던 엄마에게 과연 여자의 삶은 얼마나 있었을까? 이 소설을 통해 엄마의 삶, 엄마의 존재, 미안한 마음 등등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나를 휩쓸고 갔지만 여자라는 존재감에 대해 엄마를 새롭게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신선하면서 충격이었고 그만큼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장례를 치르는 것도 마지못해, 겨우 도리를 지키고 있지만 결국은 엄마와의 화해를 죽음을 통해 한 것 같았다. 직접 하지 못했던 말들이 넋두리가 되고 회한이 되고 때론 원망과 미움이 덧대어 질지언정 결국은 엄마와의 긴 작별인사였다. 여전히 엄마에 대한, 고향에 대한, 지난날에 대한 마주침이 불편하고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일이었기에 소용돌이치는 주인공의 마음속을 헤집다 나온 기분이었다. 덩달아 화가 나기도 했고, 그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란 대목들에서는 짜증도 났다. 하지만 결국은 엄마의 자식이라는 사실, 하나뿐인 엄마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없음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엄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펼쳐놓기도 했지만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지 자못 궁금해졌다. 아이들이 커가는 걸 볼 때마다 예뻐서 어쩔줄을 모르지만 살갑고 꼼꼼하고 똑 부러진 엄마가 아닌, 게으르고 나만의 시간도 원하고 무엇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지 의기소침해질 때가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큰 소망은 아이들과 함께 오래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건강해야 하고 아이들과 소통도 잘하는 엄마가 되어야 하고 남편과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다. 적어도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엄마와의 작별이 긴 길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 주고 싶은 게 현재 나의 마음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훗날 내 아이들에게 이 소설의 제목이지만 조금은 즐겁게 ‘잘 가요 엄마’란 인사를 들으려면. 그리고 사랑하는 내 엄마에게 그런 인사를 건네려면 말이다.
김주영 등단 만 41년, 마침내 써내려간 그 이름, ‘엄마’

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아라리 난장 멸치 , 그리고 2010년 발표한 빈집 까지, 등단 41년, 일흔셋의 나이, 천부적인 이야기꾼 김주영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작가생활 동안 그 걸음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긴 시간, 한 번도 그 이름을 올린 적은 없다. ‘엄마’.

작가는,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 수밖에 없는 그 이름을, 비로소 소리내어 부른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우리 시대 모든 어머니들이 살아낸 모성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길고긴 산고를 겪고, 제 젖을 물리고, 제 살을 떼어주며 우리를 키워낸 어머니. 그 촌스럽고 어리석고 못난 이름,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다. 미련하고 바보 같은 엄마의 이야기는, 그래서, 대가 김주영의 단련된 손끝에서 더욱 미련하고 촌스럽게, 그래서 더욱 아프게 그려진다.

소설은 엄마의 죽음을 배다른 아우에게서 전해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결국 제 발로 고향을 떠나 떠돌이로 살게 만든 엄마에 대한 원망을 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한 ‘나’는, 엄마의 장례에 관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며 회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엄마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이 ‘나’로 하여금 자꾸만 흔들리게 만든다. 비록 육신은 한줌 뼛가루가 되어 흩어졌지만 당신의 마음까지 흩어져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 오히려 시나브로 다가와 아련히 스민 당신. 아무렇게나 떠난 엄마지만, 결국 ‘나’는 엄마를 아무렇게나 떠나보내지 못한다. 장례를 치르고 아우와 함께 돌아온 ‘나’는 엄마가 쓰던 싸구려 비닐가방 속에서 한 번도 쓰지 않은 립스틱을 발견한다.

어려운 살림을 챙기며 자식을 돌보느라 엄마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그 무엇, 그러나 가방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소중히 간직해왔던 그 무엇, 엄마가 엄마임을 당연하게만 여겼던 자식들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바로 그 무엇. 엄마도 결국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아픈 이야기는 이렇게 끝없이 이어진다.


잘 가요 엄마

작가의 말